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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친구를 보내며

웹지기 2018.04.26 10:54 조회 수 : 200

주일 2018-04-29 

이 시간 저희 가정은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있을 것 입니다. 제 컬럼을 찾아보니 겨우 열 달이 지났습니다. 제 친구는 그 사이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고, 친구의 아내는 한국에까지 남편을 데려가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지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무슨 말로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을 지,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떠납니다. 친구를 그것도 나보다 젊은 친구의 화장 예배를 집례하는 것은 목사라도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주님의 품으로 안식하러 떠나는 길입니다. 온전히 주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제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 방문했을 때 친구가 했던 말이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돌아보니 주님을 위해서나 남들을 위해서 산 것들이 너무 없어서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 만약에 살려 주시면 이제는 주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후회없이 살고 싶습니다.” 당연한듯 함부로 쓰고 있는 이 시간들이 제 친구에게는 그렇게도 소중했습니다. 시간은 결코 우리가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단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것이고, 주시는 만큼만 누릴 뿐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시간을 대하는 저를 친구의 마지막 말이 흔들어 깨웁니다.

 

세월호에서,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마지막 남긴 말들은 한결같이 ’사랑해 엄마! 고마워 아빠!’ 가족들에게 그 말을 하고 종종 떠나곤 합니다. 얼마나 자주 그런 말들을 하고 사는지? 따져보면 은혜 아니고 감사치 않은 것 하나 없지만, 너무나 쉽게 주신 은혜를 당연시하고 감사를 표현할 줄 모른 채 바삐 사는 저를 돌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시시한 데 목숨 걸고 시간을 허비하곤 합니다. 제 친구는 중국 선교하던 평신도 선교사 부모님이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이 어디서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아들을 우리 허물과 죄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외면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하나님 아버지만이 친히 친구 부모님의 위로가 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과 부활이 없다면 이것은 모두 한 때 지나가는 꿈같은 일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2-44) 그 부활의 때 다시 만날 주님 앞에 가져갈 삶의 열매를 헤아리며,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감사하며 소중히 쓰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다 되십시다. 평소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표현하면서, 후회없이 사십니다. 교우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