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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무화과 Fig

웹지기 2017.07.29 12:24 조회 수 : 171

주일 2017-07-30 

대학 다니기 전까지 저는 무화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만 나오는 이상한 과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목포 집에 다녀온 친구가, 보자기에 싼 대나무 바구니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 속에 가득 담긴 무화과를 건네 주는데, 낯선 것이 조심스러워 하나만 받아 물었습니다. 안에 키위 씨같이 연한 씨가 씹히는 비릿하고 달콤한 맛이었습니다. 물론 친구 덕에 이제는 가끔 사서 먹는 저의 기호 과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온 무화과도 포도처럼, 이제는 생생한 경험 속의 과일이 되었습니다.

 

무화과는 에덴 동산에도 있던 나무로 아직도 이스라엘에서는 길 가나 정원, 과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나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기들 치부를 가립니다. (창3:7) 봄 가을로 수확하는데, 많게는 다섯 번까지 열매를 추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달래려고 현숙한 여인 아비가일이 급히 마련한 음식 중에 무화과 뭉치 이백 개(삼상25:18)가 포함됩니다. 히스기야를 죽을 병에서 살릴 때, 이사야는 무화과 반죽(왕하20:7)을 환부에 붙입니다. 식용으로나 약용으로 쓰이던 무화과는 예수님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무화과 나무 비유(마24:32)는 아마 무화과 싹이 돋기 시작한 4월에 하셨을 것 같습니다. 생명의 첫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만큼, 새 생명의 역사가 도래한 사실을 알리기 안성맞춤인 때가 있습니까? 반기독교적 지식인 버틀란트 러셀은 예수가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사건(막11:12-14)에서 그의 인격에 실망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무화과는 입이 무성하면 열매도 함께 맺습니다. 무성한 무화과는 말만 무성하고 믿음의 실체가 없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나무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잎만 무성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거룩한 선지자적 분노를 쏟으신 것입니다.

 

올 봄 무화과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텃밭에 심었습니다. 콜럼비아의 한겨울 추운 기온에도, 잘 견딜 수 있는 시카고 품종이라고 합니다. “언제 과일을 따겠다고 심느냐?”던 아내도, 가끔 들여다 볼 만치 이제는 가지를 뻗고 잎도 제법 무성해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가 추수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애당초 저는 추수를 기대하면서 심은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거기 무화과가 심겨진 것도 모른 채 잡초 속에 파묻힐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추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제가 심었고 또 물 주고 가꿨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잎이 무성하게 잘 자라다 보면, 어느덧 튼실한 과실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잠2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