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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기도 단상 How to Pray

웹지기 2017.03.17 16:50 조회 수 : 137

주일 2017-03-19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는 내가 조종하고 내 안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우리 내면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즉 기도는 '은혜'같이 우리 안에서 조종하고 움직여 하나님 뜻과 일치해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이 외부에서 우리 마음으로 들어와 우리를 변화시키는 '외적 은혜'이다.” 기도를 오해하는 '신인협력주의'가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는 반드시 사람의 의지에 호응해 작동돼야 이뤄진다”는 태도입니다. 믿기 전에는 우리 스스로 뭔가 이룰 수 없지만, 믿은 후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공로주의입니다. 캐토릭 신학인데 개신교 안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믿기 전이나 후나 우리 힘으로는 '은혜'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기도도 같습니다. 믿은 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수단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외부에서 다가오는, 그저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기도의 삶 자체를 누려야 합니다.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지 그저 달라거나 주문을 외워 뭔가를 이루는 수단이 결코 아닙니다. 기도는 '인격체'로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인격끼리 만나 대화하듯 인격적으로 만나 소통하며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바로 기도입니다. 일상적 필요가 기도의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기도의 특권을 남용하지 않으려면, "자기 영광을 위한 기도를 버려야" 합니다. 늘 자기 간구하는 것만 목적으로 해 자기 문제만을 위해 밤낮 기도하는 일은 자제해야 합니다. '자기 문제'때문에 시작되었더라도 반드시 내면에서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대화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타 종교의 기도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길수록 좋다는 식으로 심리적 위안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언부언하면서까지 장시간 기도하려고 자신도 모르는 말을 읊조리며 애쓰는 것은 "지성이면 감천’이란 식의 태도입니다. ‘정성이 들어가고 기도가 차야 소원이 이뤄진다’는 무속신앙의 태도로 기도의 본질을 놓치는 행위입니다. 말 많이 한다고 기도를 더 많이 들어주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이지만 진솔하게 기도했으면 한나가 기도하고 얼굴에 수색이 사라진 것처럼 주님의 간섭하심을 기다리며 기다리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시간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기도를 수단으로 뭔가를 얻어내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기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아뢰며 그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붙잡아야 할 것이 바른 기도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부족을 깨닫는 사람일수록 기도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기도는 자신만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장시간 기도해 남에게 자랑하는 완장은 더더욱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