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컬럼
주일 | 2017-1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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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밤 라스베가스 콘서트 현장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59명이 죽고 500명 이상 총상을 입은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십 년 전에 우리 가족도 갔던 장소입니다. 이런 끔찍한 일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때 어디 계셨나?” 가족과 친구를 잃은 분은 분명 “참사가 벌어질 동안,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분들은 질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그때 어디 계셨습니까?
로마서 8:28절은 그리스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암송 구절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려움 겪는 분들 격려할 때, 그리고 저도 설교에 자주 인용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통상 쓰이는 것처럼, “Don’t worry, be happy. Everything’s going to be fine!” 그 뜻일까요? 그렇다면 이 말처럼 현실성 떨어진 말이 없습니다. 당장 바울이 이 말을 써 보낸 전후 사정만 봐도 아닙니다. 복음 전하기 위해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 바울이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기적이 없습니다. 돌에 맞아 죽다 살고, 자연 재해로 고통받습니다. (고후11:26)
바울은 자기 병 낫기를 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는데, 어떤 응답을 받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거절입니다. 기도 동기도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한 걸 보면, 복음 전파에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거절을 바울은 ‘스스로 자고하지 않게 하나님이 두신 안전핀’으로 받습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가로막는 어떤 성벽이라도 훌쩍 타넘듯, 상황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로마서 보내고 로마 성도들 만나러 미결수 바울은 로마까지 여행합니다. 그때도 감옥을 전전하다, 광풍 유라굴로 만나서 파선까지 당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일이 형통합니까? 따라서 이 말은 “Don’t worry, be happy. Everything’s going to be fine!” 그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유효한 부르심’에 대한 가르침에서 나온 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표준 10장에 “유효한 부르심”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생에 이르도록 예정한 모든 이들, 즉 그들만 당신이 예정하고, 적당하다 여기신 때, 효과적으로 부르신다. 말씀과 성령으로 부르시고, 그들이 나면서부터 처한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불러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와 구원으로 이끄신다. 또한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그리고 구원에 관해 깨우쳐 하나님 일들을 이해하게 하시며,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그들에게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그들의 의지들을 새롭게 하시고 전능한 능력으로 그들이 선한 것을 결심케 하시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신다. 그러나 은혜로 말미암아 기꺼이 나오게 되므로, 가장 자유롭게 나오게 하신다. 이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고,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미리 하나님이 보시고 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피동적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생하고 새롭게 된 후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며, 또 이 부르심 가운데 제공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성령님은 신들림 현상과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 의지를 강제하거나, 사람이 원치 않는데 억지로 회심케 하지 않습니다. 영혼 속에 가장 부드럽게 스며 들어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의지가 그 내적 부패 상태에서 조금씩 해방되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 원치 않던 의지가 원하게 됩니다. 새롭게 살아난 의지는 즉각 활동하게 돼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고 믿게 됩니다. 그렇게 유효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룹니다. 즉 부르신 그 분의 예정하신 뜻대로 의롭다 하신 그들을, 마침내 영화롭게 하실 때까지 반드시 그 부르신 목표를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당면한 현실 문제 해결 받고, 살 동안 형통한 삶 누구나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도 기도했고, 예수님도 우리 현실적 필요를 하늘 아버지께 자녀로서 간구하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현실과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게 하나님 뜻이니, 나는 할 일이 없다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람 수준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으면 얼마나 더 기꺼이 구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까?
‘예정 교리’를 장로교 교리란 분은 로마서를 장로교 책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8:29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으니…” 30절도 “미리 정하신 그들을.” 칼빈과 장로교 교리가 아니라,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물론 예정 교리 predestination은 세상 만사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이나 숙명론이 아닙니다. 유효한 부르심을 주도한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란 “구원의 확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만약 인간적 결심이나 노력으로 구원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좌우된다면, 누가 구원을 확증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못 합니다. 설령 하나님 편에서 예정해도, 미리 내다 보신 예지가 아니라 하나님 의지에 따라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고, 그 작정 가운데 우리 구원도 들어갑니다. 사람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미리 그렇게 작정하셨으면, 그리고 믿을 걸 미리 내다보고 구원하신 게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믿게 하셨으면, 그 결과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그 결과는 못 바꿉니다. 다음 절 보십시오. 그게 지금 바울이 처한 상황이자, 의와 진리 편에 선 사람들 현실입니다. 시44:22절 인용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게 바울이 처한 현실이지, 형통한 처지에서 이 글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무슨 소망으로 그리고 무슨 힘으로 바울이 그 어려움과 난관을 이기고 있습니까? 바울에게 우리가 배울 승리의 비결입니다. 먼저 소망이 뭡니까? “주홍 같은 죄라도 눈같이 희어지고 양털 같이 희게 의롭다 선언한, 그 칭의를 바울은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칭의한 그 분이, 영화롭게 하실 그날까지, 유효하게 부르신 주님 손아귀에서 앗아갈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의지와 결심이었다면 진즉 끝날 일입니다.
그리고 무슨 힘으로 이겨냅니까?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영 성령의 능력입니다. 예수는 죽었다 살아나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성령도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앞의 7 가지가 현실적 난관이라면, 뒤의 10가지는 보다 포괄적 장애 요소들입니다. “사망이나 생명, 천사들이나 권세자들, 현재 일이나 장래 일, 능력이나 높음,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다시 라스베가스로 돌아가서,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때도 거기 계셨습니다. 그리고 추악한 타락의 현장에서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용기와 위로를 채워 주셨습니다. 수천 발 총탄이 공중에서 비처럼 쏟아질 동안, 아내를 자기 몸으로 막은 남편에게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아이를 덮고 엎드린 아빠에게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달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고 헌혈하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마음에는 위로를 주십니다.
운명론자와 크리스천이 지중해에서 같은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사람 살려’ 비명이 들려 보니까, 허우적대며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 순간 운명론자는 “신이 구원하기로 작정되었으면, 저 사람은 살아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아무 일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이 상황에 두신 이유가 있다. 저 사람을 구원하도록 보게 하셨으면, 내게 구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물 속에 뛰어 들어, 조난 당한 사람을 구합니다. 예정을 인격적으로 이해한 사람 태도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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