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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남의 신 신기

웹지기 2015.05.30 08:48 조회 수 : 339

주일 2015-05-31 

지난 주 주보를 훑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 순서에 ‘사도신경’으로 되었어야 할 것이, ‘사도행전’으로 인쇄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보들을 다 살펴봤더니, 세 주나 더 잘못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도 오자를 지적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1부 예배 순서라 모두 무심코 넘기셨을 수도 있고, ‘그 정도 오타는 있을 수 있다’며 주보 만드는 저를 배려해서 알고도 아무 말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꼼꼼한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후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더 송구스럽고 고개가 숙여집니다.

 

주보를 인쇄하기 전에 먼저 한 장을 프린트해서 최종 점검을 늘 하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쓴 글에서 오자나 탈자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부목사로 주보 인쇄를 책임지고 있을 때, 아주 꼼꼼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어떻게 찾는지 오백명 이상이 읽고도 찾지 못한 오자나 탈자를, 기가 막히게 찾아서 주보를 들고 오셨습니다. 대부분 토요일 밤늦게 주보가 마무리 되기 때문에, 미리 주보 교정을 부탁드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알려주신 다음에야 알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알려주시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장로님께서 쓰신 글에도, 종종 오자나 탈자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뜻으로, ‘털이 바늘같이 꼿꼿한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이 부드럽다고 옹호한다’는 격언입니다. 이 격언은 자기가 쓴 글뿐만 아니라, 자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의 글에서는 쉽게 오탈자를 찾는 사람도 스스로 쓴 글에서는 찾지 못하고, 팔이 안으로 굽듯 쉽게 자만에 빠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의 입장이 되어보다’를 영어로 “put oneself in another’s shoes”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직역하면 ‘남의 신 신기’란 뜻입니다. 인디언 수 족에게도 “우리가 남의 신을 신고 보름 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삼가게 하소서”라는 참 너그럽고 지혜로운 기도문이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그려낸 것처럼 약탈을 일삼고 북치면서 소리 지르고 춤이나 추는 야만족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기도문이 아닌가요?

 

개인의 인격이나 사회 의식의 성숙도는, 스스로를 얼마나 상대화시키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느냐에 딸렸습니다. 미숙한 사람이나 사회에는 때거리 문화와 진영논리가 늘 우세합니다. 객관적 실체와 옳고 그름이 판단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남이가?’ 하며 감정에 치우쳐 움직입니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한국 정치에서 종종 보는 현상입니다. 무관심때문이 아니라, ‘남의 신 신기’ 할 줄 아는 우리 교우님들의 높은 수준때문일 것이란 제 추측이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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