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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못 다한 일들

웹지기 2013.06.16 10:42 조회 수 : 1207

주일 2013-06-16 

식탁에 둘러앉아 막 수저를 드는데 동생이, “, 이게 엄마 열무 김치예요. 형 오신다고 새로 담그신 거예요.” 어머니는 십년만에 귀국하는 아들이 괘씸하지도 않으셨나 봅니다. 헛기침에도 떨어질 줄 모르던 속에 응어리가 끝내 자제력마저 잃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말없이 수저에 눈물을 담아 열무를 씹었습니다. “큰 아드님 오신다고 그렇게 기뻐하셨는데…” “그 긴 세월도 기다리셨는데, 어찌 일 주일을 못 기다리고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찌 어머니를 잃은 자식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정말 슬픔은 이해되는 게 아니라, 그저 경험되는 것 같습니다.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속에 응어리만 커질 뿐, 그저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상처를 달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여든 여섯번째 생신을 며칠 앞둔 어머니 고 이복남 권사님은 더 이상 슬픔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런 몸을 덧입고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 부활의 소망으로 저는 가족들과 함께 이별의 슬픔을 이겨 나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고향에 함께 여행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곳은 어릴 적 저의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아주 기뻐하시며 친구들에게 그 여행 계획을 자랑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촌들도 떠나버린 그곳을 찾아갈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을 불러 생일상을 받으시려던 어머니의 써프라이즈 파티 계획도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그 외에도 못 다한 어머니의 일들은 많습니다.

제가 황급히 떠나 왔지만, 많은 우리 교우님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셨고,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어머니를 보내드린 자리에 화환을 보내주신 분도 계시고, 귀국해 있던 청년들도 찾아와 위로해 주었습니다. 지금 동생들이 모두 나가고 저 혼자 어머니 방에 남아 이 컬럼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들 위로하고 예배 인도하느라, 참아야 했던 제 애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하는 아들 교회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통해 신앙의 길에 들어오셨지만, 여생을 주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늘 인격적으로 대하셨습니다. “잘난 열 아들보다 나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삽십년을 홀로 사시면서도 늘 감사가 넘치셨습니다. 믿음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시고, 먼저 주님 품에 안기신 어머니의 그 따스한 미소가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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