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컬럼
주일 | 2013-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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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외등 위에 빈 둥지가 하나 생겼습니다. 올 봄에 부지런히 풀과 나뭇 조각을 물어 날라다 새로 튼 겁니다. 곧 알을 낳고, 새끼 키우는 것을 몰래 숨어 즐겼는데, 비행 연습 떠나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혹시나 해서 몇 번을 들여다 봤지만, 아주 떠난 것입니다. 어릴 때 저는 소쩍새 둥지를 맡아놓았다, 날기 직전 새끼를 잡아다 기른 적이 있습니다. 밤새 어찌나 구슬피 “소쩍 소쩍” 울었던지, 이튿날 아침 군화 끈을 매시던 아버님이 그러셨습니다. “어미 새를 찾아 놔 주거라.”
학교 다녀 오기 무섭게 연못에 가 개구리 잡아다 먹이면서 주인 행세를 해 왔는데, 친구들에게 자랑할 꺼리가 없어져도 군인인 아버님 명을 거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개구리 잡을 필요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새들을 즐길 수 있기까지는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아직 열대어와 식물들을 기르지만, 소유하지 않고도 즐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빈 둥지를 뒤로 하고 떠난 녀석들이 보고싶어, 뒤 뜰에 새 모이통을 놓았습니다. 흔해 빠진 참새들이 먼저 부지런히 찾아오더니, 곧 떠난 새와 똑같은 모양의 새들도 찾아 듭니다. 그리고 갈색의 암컷 카디날스가 먼저 오더니, 빨간색 수컷까지 이제는 단골이 되었습니다.
서부 해안에 풀장이 딸린 대 저택을 소유한 한인들이 꽤 있답니다. 그 큰 집을 유지하려면 주인은 집에 있을 여유도 없이 바삐 일해야 합니다. 그 큰 집 뜰을 거닐고 가끔 풀장에 나와 수영도 하고 햇볕에 몸을 말리는 사람은 그 집에서 일하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현재 삶에 만족하십니까? 남 갖지 못한 신제품 자주 사는 편 아닙니까?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부담감은 거의 없고, 내가 애써 번 돈이니 내 사고 싶은 것 부담없이 쓰고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이 아깝지 않습니까?” 토마스 머튼은 “우리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벗고 비우는 만큼, 그에 비례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면서,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배우기를 권합니다.
모이통에 날아든 꼭 닮은 녀석들을 볼 때 어찌나 반갑던지 마치 저를 보고 반가와 꼬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만 같습니다. 빈둥지는 마치 저의 빈 주머니 닮았지만, 비어서 서글픈 것이 아니라, 비었기 때문에 자유로이 노니는 생기찬 녀석들 모습을 곁에 둘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제게 빈 둥지는 리차드 포스터가 말한 ‘단순한 삶 (simple life)’의 원리를 가르치는 시청각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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