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컬럼
주일 | 2013-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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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난 자리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 향기가 남습니다. 그 향기 속에는 그 사람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 남습니다. 다음 사람이 쓸 수 있게 가지런히 정돈하는 배려는, 누군지도 모르는 떠난 사람 모두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여럿이 함께 쓰는 공간이나 물건에서 그런 배려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공원마다 있는 말끔한 바베큐 그릴이 참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여럿이 쓰는 것이 늘 정돈될 수 있는지… 배려하는 그 마음들에 “역시”하며 감탄한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오래 살며 보니 공원 잔디밭에 개똥도 보이고, 배려 없기는 여기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만큼 익숙해 진 탓인지, 아니면 사회적 가치가 몰락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도 이제는 다음 사람이 들어오도록 문을 잡아 주고, ‘감사’ ‘죄송’ 같은 배려의 말과 행동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갑니다.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면 부딪히거나 앞지르는 걸 대수롭지 않게 하기 쉬운데, 여기서 그러면 대개는 “Excuse Me!”하는 불쾌한 반응을 만나게 됩니다.
세살때 와서 자란 둘째아이 초등학교 때, 꾸지람하다 스스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반성할 맘이 있으면 고개를 떨구거나 눈을 내리 깔아야 할텐데, 저를 빤히 바라보는 겁니다. 반항하는 것 같아 어찌 괘씸한지 화가 치밀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훈계 들을 때는 반드시 눈을 마주쳐야 한다(eye-contact)는 사실을 책에서 읽었지만, 실제 빤히 보는 눈이 인정되기 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미국 교회 배려로 좋은 시설을 큰 부담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큰 배려에 대한 우리들 작은 배려는 무엇이겠습니까? 월요일에 청소하는 분이 부엌바닥에 뭐가 넘치는데 치워야 하느냐 물으러 사무실에 올라왔습니다. 가 보니 꽉찬 김치병이 발효되어 넘친 겁니다. 좀 덜어내고 씻어 냉장고에 넣었지만,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문제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차제에 냄새가 심한 음식을 조금 자제하는 것이 어떨른지요? 민족마다 고유한 냄새가 있는데, 한국인에게는 김치 냄새랍니다. 저도 김치, 특히 쉰 김치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그 냄새는 참 납득이 어려운 아리송한 냄새랍니다. 떠난 우리들 자리에 어떤 향기를 남기시렵니까? 아예 안 먹을 수는 없겠지만, 배려하는 향기로 김치는 아무래도 아닐 것 같습니다. 어디 김치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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