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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땡볕

웹지기 2016.06.11 15:01 조회 수 : 131

주일 2016-06-12 

요 며칠 날씨가 아주 뜨겁습니다. 벌써 이렇게 불볕 더위가 시작되는 걸 보니, 올 여름은 많이 무더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라니냐 현상으로 많이 추울 것이란 예보들도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곡물 가격뿐 아니라 원유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이래저래 서민들은 무더운 여름과 춥고 배고픈 겨울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저희 듀플렉스 뜰에 새로 심겨진 나무들이 걱정되서, 며칠 물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심은 포도나무 두 그루중 하나는 이미 말라 버렸고, 한낮에는 깻잎들조차 축 늘어진 모습입니다. 그래도 흙을 두텁게 한 덕에 방울토마토는 잘 자라서 열매를 제법 달기 시작했습니다. 풀밭에 심어놓은 불루베리와 산딸기들은 올해는 따기 어렵겠지만,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언젠가 따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제가 출타중인 동안은 비도 자주 왔고, 작은 아이가 더러 물을 줘서 채마전이 다 말라 버리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나무들이 무더위를 잘 넘길 수 있기만 바라면서 물을 듬북 부었습니다. 호스 길이가 짧아서 절반은 물을 길어다 붓느라, 땡볕에 비지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밤에 컬럼을 쓰다 말고, 뒷뜰로 나갔습니다. 그리 맑은 날은 아니지만 북두칠성이 바로 머리 위로 보이고, 반딧불이 여기저기 날아 다녔습니다. 한낯은 그렇게 덥기만 하더니, 밤공기는 서늘하기까지 했습니다. 낮에 물을 듬북 마신 나무들도 휴식을 취하는지 이따금 지나는 차소리를 빼곤 적막한 밤이었습니다. 모기에 쫏겨 결국 다시 들어올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 여름이 꼭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젊을 때는 더위를 먹고 두통에 시달릴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정신도 산뜻하고 몸놀림도 민첩해져 생기를 되찾곤 했습니다. 그러나 과일에 단맛이 배게하고 곡식을 영글게 하는 것은 한여름 땡볕뿐입니다. 혹독한 땡볕을 견딘 포도나무일수록 단맛이 밴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그런 포도 추수를 기대하면서 포도원지기는 한여름 탱볕에도 불구하고, 가지치기를 하며 솎아내는 일을 마다 않습니다.

 

포도는 저 혼자 땡볕에 나앉은 줄 알지만, 그 땡볕에는 그늘도 없이 포도 돌보기에 여념이 없는 포도원지기가 있습니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사27:3) 한여름 땡볕 아래가 아니면, 포도나무에게 포도원지기는 사실 있으나 마나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땡볕 아래라야 ‘때때로 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하는 포도원지기가 꼭 필요하고, 그런 포도만이 단맛이 제대로 배게되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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