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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 제일장로교회

목회자 컬럼

부활은 무슨?!

웹지기 2016.03.26 12:18 조회 수 : 81

주일 2016-03-27 

올해는 이른 부활절인데도, 벌써 여기저기 돋아난 새싹들이 눈에 보입니다. 봄에 새싹이 돋는 것은 자연의 이치겠지만, 언제 봐도 신비하기만 합니다. 단단한 껍질에 싸여 겨울을 난 가지와 줄기에서 어떻게 그 껍질을 뚫고 여리디 여린 새 싹이 뻗어 올라올 생명력을 그 속에 가졌는지 신비하기만 합니다. 겨우내 바짝 말랐던 껍질 속에 푸른 생명이 가득 차서, 때를 기다렸던 것 아닙니까!

 

“죽은 사람이 다시 살다니” 공공연히 부활을 비웃는 사람들이 고린도교회에도 있었습니다. 실은 부활한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이 그들 가운데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부활은 무슨?”그랬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최소 오백명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당시만해도 많은 목격자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부활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사람"(고전15:36)들이 있었던 것은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선택적’이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껍질을 뚫고 새싹이 뻗어나 자라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이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부활할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밭에 씨를 뿌려도 씨앗은 썩고 대신 그 씨앗을 재료삼아 새싹이 틉니다. 그러나 이 씨앗과 새싹은 별개가 아닐 뿐더러, 새싹이 틔우기 위해 먼저 씨앗이 죽은 것입니다.

 

씨앗이 죽는다고 씨앗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씨앗이 새싹으로 핀 것입니다. 그러니까 씨앗과 새싹 사이에는 단절과 동시에 연속성이 있습니다. ‘비연속적 연속성’이란 자연의 섭리로 사도 바울은 죽은 사람의 부활을 설명합니다. 씨앗에서 다른 싹이 피는 것처럼, 혈육의 몸이 부활의 몸을 덧 입는데, 이 혈육의 몸과 부활의 몸 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있습니다.

 

흙으로 지어진 우리 몸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할 것입니다. “죽은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된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심령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부활절 아침 부활의 산소망이 되신 우리 주님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우리도 우리 눈으로 부활의 주님, 영광 중에 우리를 맞아주실 예수님을 뵈올 것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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