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학 자료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난제들
2012.01.18 15:21
1.
세스바살과 스룹바벨과
동일 인물인가?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룻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에스라 1:8)
바사 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키면서 성전 재건을 돕기 위해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때 탈취해 온 성전 기명들을 세스바살에게 주어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게 하였다 (주전
538). 그러면 여기서 세스바살은 누구인가? 그는 스룹바벨과 동일 인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별개의 인물인가? 세스바살은 성전 기명을 예루살렘으로 옮겨갔을 뿐
아니라 성전의 기초를 놓아야 하는 책임도 있었다(스 5:14-17). 그는 바벨론 포로 후에 첫 유대의 총독이었으며 왕과 스스로 결정권이 없는 시대에 새로운 지도력의 형식을 안내하였다.
그러나 그밖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므로 그의 이름, 신분, 역할 활동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에스라 1서에서는 그를 칠십인 역에서 사사바살로 나오는 사나바살
(Sanabassar)로 보며 교회사가 요세프스는 세스바살을 에스라 5:6에 나오는 스달보스네로 보았다. 따라서 그를 외국인으로 페르시아 관리로 생각하였다.
근래 학자들은 가끔 세스바살을 한 편으로는 역대상 3:18의 세낫살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편 스룹바벨과 동일시한다. 그것은 세낫살은 여고니야의 아들로 이름과 세스바살의 직위의 유사성에 근거한
이론이다. 유다의 왕자나 총독이라는 직위는 다윗의 상속자처럼 아주 중요한 인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세낫살은 다윗의 후손이다.
또 다른 견해는 세스바살을 스룹바벨과 동일시하는 이론인데 이 이론은 성전의 기초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것으로 학개와 스가리야는
스룹바벨이 총독이요 주전 520년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라고 강조해서 단언한다. 따라서 세스바살이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라면 같은 사람을 가리켰을 것이다. 이렇게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이 같은 인물에 대한 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포로 후기에 가끔 한 사람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룹바벨도 고레스에 의한 성전 기명을 가져온 사람이요 학개, 스가냐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에 따르면 역시 유다의 왕자로 기초를 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그는 그런 역할에 적임자였다. 다니엘의 궁정 이름은 벨드사살이었다(단
1:7). 따라서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궁궐 이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이름을
정말 세스바살의 궁정 이름으로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른 이론은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양아버지 스알디엘의
궁정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스알디엘/세스바살이 바벨론 총독에 의해 이
직위에 임명되었으며 이 직위는 스알디엘/세스바살이 죽은 후에 스룹바벨에게 전가되었다고 한다. 에스라
5:16은 하나님의 전의 기초를 놓은 자는 세스바살이었다고 언급한다. 에스라
3장은 이 기초를 놓는데 참여한 세스바살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스알디엘/세스바살 그리고 스룹바벨이
아버지/아들 팀으로 함께 이 공사에 참여했으며 세스바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설의 약점은 예루살렘의
동사 총독으로 두 사람이 활동했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또 세스바살이란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에스라 2장의 긴 명단에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가능하다. 만일 세스바살이 스알디엘과
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기초를 놓은 후에 곧 죽었을 것이다. 만일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한 사람이었다면 그
궁정 이름은 단순히 떨어지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 스룹바벨이 보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시문학인 에스드라일서
6:18에서는 성전 기명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두 사람에게 맡겨졌다고 하였다. 만일 이 설을 지지한다면; 세스바살은 그의 조카 스룹바벨보다 앞섰을 것이다. 세스바살은 고레스에 의해 임명되었다(스 1:8; 15:14). 그러나 주전 537년 돌아온 후에 곧 죽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스바살의 조카 스룹바벨이(대상 3:17-19) 그의 삼촌에 의해 빈 그 자리에 등용되었을 것이며 총독이라는 직위를 받았을 것이다(학
1:1, 14; 2:2,21). 이 견해는 두 사람이 주전 536년 성전 기초를
놓는데 협력한 사실로 지원 받는다(스 5:16; 슥
4:9). 다만 스룹바벨이 이십년후에 그 공사를 완성하였다(학
1:1, 12; 슥 4:9). 따라서 어떤 해석을 취하던지 난제는 풀린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오류가 있다든지 모순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2.
예레미야의 예언이
정말로 정확하게 이뤄졌나?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에스라 1:1)
에스라는 유대인들이 포로 되어 70년을 있게 되리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로 고레스의
조서가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렘 25:11-12, 29:10). 그러면 칠십년 바벨론 포로의 연대는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그 시작과 종결의 연대는 무엇인가?
바사 왕 고레스 원년은 주전 539년 10월 바벨론에 포로 후 니산 538년에 시작되었다. 고레스는
바사제국의 설립자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의 왕으로 주전 559년에서 530년까지 다스렸다. 그는 550년에 메데를 정복하고
547-46년에는 리디아와 아나토리아를 정복하고 539년에 바벨론을 포획하였다.
그런데 다니엘서 1:1에 따르면 여호야김 제 삼년 605년에 유대인들의 첫 번째 추방이 있었다. 따라서 70년은
536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해서 처음으로 포로 되어 간 때를 시발점으로
한다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고레스의 조서 사이에는 칠십 년이 아니라 다만 48년이 경과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주전 586년 성전의 파괴에서 주전 516년 그 성전의 완전한 파괴때까지로 계산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의 의도와 다르다.
그는 포로의 기간을 언급하고 있으며 고레스의 조서는 성전의 재건을 위한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칠십 년은 개략적인 수이거나 향년을 의미한다고 본다 (P.R. Ackroyd). 그러나 70년은 바벨론의 지배를 가리키며 주전 612년에서
539년(니느웨의 멸망)을 가리킬 것이다.
어느 경우든지 대략 70년이 된다. 그런데
70년을 포로의 정확한 기간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그 예언의 성취를 설명한다. 첫째 방법은 유대인들이 처음으로 바벨론에 잡혀갔던 때 주전 605년을(단 1:1; 왕하 24:1) 포로의 시작 연대로 본다.
따라서 그 포로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제이의 성전 공사를 시작했을 때 주전 536년 끝났다.
두 번째 산출 방법은 포로 칠십 년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파괴시킬 때 주전 586년에 시작해서 제이 성전의 건축이 완성된 때까지로 본다.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예레미야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개인의 운명이나 민족의 운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시며 주권적으로
주관해 나가신다.
3.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족보 인원이 다른 이유는?
에스라 2:3-35과 느혜미야 7:8-38에는 바로스의 자손(두 곳에서 모두 2172명이다)
으로부터 시작된 서른 세 가족의 목록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서른 세 가족의
숫자 중에서 열 네 가족의 숫자가 서로 다르다. 아쳐(G.L. Archer)는 그 차이를 아래와 같이 소개해 준다. 4명이 차이가 나는 가족이 하나(로드 와 하딧과 오노의 자손, 725명과 721명으로
서로 다르다). 6명이 차이 나는 가족이 둘(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2812명과 2818명으로 다르게 기록되었으며 빈누이의
자손이 642명과 648명으로 다르게 기록되었다) 베들레헴 사람 느도바 사람에 있어서는 그 합계가 느혜미야 7:19(2067)보다도 에스라
2:14(2056)이 11명 적다. 삿두 자손의
경우에 있어서는 에스라는 945명으로 보고하고 있는데 845명(느 7:13)보다 100명이 많은 숫자이다.
벧엘과 아이 사람(스 2;28의
233명과 느 7:32의 123명)의 경우도 유사하다. 아딘 자손의 경우에는 에스라 2:15(454)은 느혜미야 7:20(655)보다 201명이 적으며 하숨
자손에 있어서는 에스라의 기록이 105명이 적다(스
9:29은 223명이고 느 7:22은
328명이다). 스니아 자손에 대해서는 에스라 2:35이 느혜미야 7:38보다 300명이 적다(3,630명 대 3930명). 가장 큰 숫자상의 차이는 아스갓
자손의 수치에 대한 에스라 2:12에 1222명의 기록과 느혜미야
7:17에 2,322명의 기록이다. 다른
19번의 경우는 두 기록이 같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14번의 불일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런 불일치는 에스라와 느혜미야만이 아니다. 예루살렘 귀환
자의 총수는 느혜미야 7:66과 에스드라 1서(I
Esdras 5:4)에서는 42,360명인데 개인적 항목을 더한 세 다른 총수는
에스라가 29,818명이며 느혜미야가 31,089명이고 에스라
1서가 30,143명이다. 그러면 서로 차이가
나는 없어진 천여 명은 어디로 간 것인가? 또 서로 총수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차이에 대한 가장 쉬운 해답은 아무래도 필사자의 오류였겠다.
다른 해답은 여기 에스라서에서는 전체가 29,818명밖에 안된다.
따라서 42,360명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12,542명이 적은 셈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수가 바로 여인과 아이들의 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수는 전체의 수에 비해 너무 적다. 또 어떤 가족은 제외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회중은 종교적인 공동체를 가리켰다. 군중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 종들과 같이 여인들 모두가 포함되었다(Galling).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석은 아마도 제미슨, 퍼셋, 브라운의 아래와 같은 설명일 것이다. 이 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언급된 모든 사람들은 전체의
집결지로 모였거나 아니면 처음에 가겠다는 의사가 있을 때에 등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
도중에 어떤 사람들은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병이나 극복할 수 없는 장애 때문에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이 두 번의 등록이 실시된 환경이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이 불일치는 충분히 설명된다. 에스라의 기록은 바벨론에서
실시되었지만 느헤미야의 기록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후에 유대에서 실시되었다. 이렇게 여러 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질병 혹은 다른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이 목록에 그만한 차이가 생길 수 있으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통계상의 차이는 어렵지 않게 설명이 가능하다.
주
1. 글리슨 아처,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310
2. Derek Kidner, Ezra & Nehemiah(Downers Grove: IVP, 1979), p.43
3. F. Charles Fensham, The Books of Ezra and Nehemiah(Grand Rapids: Eerdmans,
1983), p. 42-43, 57
4. Edwin Yamauchi, Ezra, Nehemiah, E. B. C. Vol.4(Grand Rapdis: Zondervan,
1988), p.601
5.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95,
941. Tamara C. Eskenazi, Sheshbazzar,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5 (New
York: Doubleday
1992), pp.1207-1208
6.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Wheaton: Victor Books,
1992), pp.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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